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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복탄력성과 바둑판 이야기

단아, 2023-04-28 21:54: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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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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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통 물건에 흠이나 상처가 있으면 그 가치가 떨어지기 마련입니다.

 

그래서 그냥 평범한 일상을 이어가면서도 이따금씩,

이토록 흠이 많고 서투르며 부족한 내가 못 견디게 괴로울 때가 있습니다.

특히 이민자로서 외국에 정착하는 입장에서는, 감히 말로 다 못 담을 고충들이 너무나 많기도 하구요..

 

그럴때마다 제가 자신을 다잡으며 마음속에 간직하던 글이 하나 있는데, 문득 마모님들과 함께 나누고 싶어서 글을 씁니다. :)

 

김소운 님의 '특급품'이라는 수필인데, 글이 좀 길어서 제가 좋아하는 부분만 뽑아왔습니다.

 

 

'비자의 생명은 유연성이란 특질에 있다. 한번 균열이 생겼다가 제 힘으로 도로 유착, 결합했다는 것은 그 유연성이란 특질을 실지로 증명해 보인, 이를테면 졸업 증서이다. 하마터면 목침같이 될 뻔했던 불구 병신이, 그 치명적인 시련을 이겨내면 되레 한 급이 올라 특급품이 되어 버린다.'

 

'"선생님도 저를 경멸하시지요. 못된 년이라고...."하고 고개를 숙이는 그 부인 앞에서 내가 한 이야기가 바로 이 비자목 바둑판의 예화이다. 

과실은 예찬할 것이 아니요, 장려할 노릇도 못 된다. 그러나 그와 동시에 과실이 인생의 '올 마이너스'일 까닭도 없다.

과실로 해서 더 커 가고 깊어 가는 인격이 있다.

과실로 해서 더 정화되는 굳세어지는 사랑이 있다.

생활이 있다.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은 아니다. 어느 과실에도 적용된다는 것은 아니다.

제 과실, 제 상처를 제 힘으로 다스릴 수 있는 '비자반'의 탄력 - 그 탄력만이 과실을 효용한다.

인생이 바둑판만도 못 하다고 해서야 될 말인가.'

 

 

요컨대, 깨지고 갈라지는 상처를 입어 흉터가 있는 바둑판이 오히려 '특급품'으로 인정받아 '값이 내리기는커녕 오히려 비싸진다는 데 진진한 묘미가 있'다는 내용입니다.

 

 

고등학생 때 공부하면서 읽었던 글이 십년 넘게 마음에 남아서 저를 지탱해주고 있습니다.

제가 제일 좋아하는 영어 단어도 회복탄력성을 뜻하는 'resilience'입니다. :)

 

음.. 사실은.. 지금 당장 너무 힘들고 초라하고 슬프고 고통스럽더라도, 꿋꿋하게 버티며 하루하루 살아내다 보면

언젠가 '특급품'이 되어 있는 내 자신을 발견하실 수 있을 거란 말씀을 올리고 싶었습니다. (사실은 제 자신에게...ㅎㅎ)

물론! 이곳엔 이미 특급품이 되신 분들도 너무나 많이 계십니다. :)

 

미국에서 그 많은 시행착오를 거쳐 너무나 훌륭하게 뿌리를 내리고, 더 나아가 도움이 필요한 다른 분들에게 기꺼이 도움을 주시는

존경하는 마모님들의 마음에도 이 글이 남아 조금이라도 힘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23 댓글

낙타

2023-04-28 22:50:15

참 좋은 글이네요. 고마운 마음에 댓글 남기고 갑니다.

단아

2023-04-28 23:08:05

낙타님, 저 사실은 올리면서 살짝 손 떨었어요ㅎㅎㅎ 무플로 차갑게 식을거 같아서... 속으로 엄청 후회하고 그랬는데..ㅎㅎㅎㅎ 감사합니다. :) 

메릴랜더

2023-04-28 23:25:14

김소운 수필에 좋은 글들이 많지요.

저도 어릴 때 깨끗하고 광나는 새 물건들을 좋아했는데

지금은 오랜 세월을 거쳐 조금은 때묻고 흠이 있는 중고, 골동품을 좋아합니다.

저도 그런 사람이 되고 싶네요. 나눠주셔서 감사합니다.

단아

2023-04-29 03:11:12

저도 훌륭하게 숙성된 와인같은 사람이 되고싶다고 생각해왔습니다. :) 메릴랜더님 말씀처럼 김소운님의 글들이 저도 참 좋습니다. 사람을 함부로 비난하거나 평가하지 않는 그 따뜻한 시선이 너무 멋져서요.. :)

ncrown

2023-04-28 23:29:53

살다보면 '존버'가 필요한 일들이 많은데 회복탄력성이 그걸 가능하게 해주는 것 같아요.

단아

2023-04-29 03:14:34

옳은 말씀이십니다. 누가 알아주지 않아도 홀로 묵묵히 버텨야 할 때, 이제 그만 다 놓아버리고 싶을 때 참 필요한 힘입니다. :)

storyteller

2023-04-28 23:35:02

많이 동감되고 좋은 글입니다. 비슷한 맥락에 최근 NBA playoff 에서 떨어진 Milwaukee Bucks의 star player Giannis 의 "failure" speech 가 생각 나네요. 1 위로 올라간 Bucks 가 8 위로 올라간 Miami Heats 에 져서 첫 번째 playoff 라운드에 진후 인터뷰할때 말한 내용인데요, 팬들과 기대에 못 미쳐서 많이 실망하고 낙담하는 인터뷰가 되지 않고 반전인 이야기를해서 viral 됐어요. 그는 진것에 대해서, "It's not a failure. It's steps to success."  그리고 나중에는 "There is no failure in sports." 라는 명언을 남겼습니다. 

 

https://fortune.com/2023/04/28/nba-mvp-giannis-antetokounmpo-bucks-reflects-shocking-loss-profound-meditation-real-meaning-success-failure/amp/

 

그런것처럼, there is no failure in life 가 아닐까 싶어요. 이기는 날도 있고 지는 날도 있지만 지는 날들이 있는게 실패가 아니라 이기는 날을 위한 디딤돌로 의미가 있는 것 같습니다. 

 

 

오늘하루

2023-04-29 00:29:27

좋은 글에 달린, 귀한 댓글 잘 읽고 갑니다. 

단아

2023-04-29 04:27:26

마모는 닉을 따라간다더니, storyteller 님 너무 좋은 말씀 감사합니다. 링크해주신 기사랑 영상 열심히 봤어요! 제가 스포츠엔 영 문외한이라 이 선수도 처음 봤는데, 영상 보니까 기자가 너무 무례하네요...ㅠㅠ.. setback도 아니고 failure이라뇨..더군다나 작년에도 같은 질문을 던졌다고..ㅠㅠ..

storyteller님 말씀대로 인생에 실패란게 있을까 다시한번 생각해 봅니다. 누가 처음부터 다 잘할까요. 오히려 실패 없이 한번에 일찍 성공하는 것이 더 위험하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 

솔담

2023-04-28 23:56:05

위로가 되는 좋은글 감사합니다

단아

2023-04-29 04:31:09

솔담님께 위로가 되었다니 너무 다행입니다. 실은 거의 일기처럼 혼자서 생각했던 거라... 혹시 다른 분들께는 별로 도움이 안되는 건 아닐까 많이 걱정했거든요. :) 댓글 감사합니다. 

오늘하루

2023-04-29 00:27:59

너무 좋은 글입니다.  지금 보다 훨씬 젊었을때는, 이런 글을 지나칠때마다, "좋은 글이다.... 아름다운 이야기다.." 라는 머리로의 이해로만 끝났던 것 같은데, 삶의 세월이 축척 되어 갈 수록,  머리의 공감 못지 않게,  마음의 울림도 느끼게 됩니다. 귀한 글 나눠 주셔서 감사 드립니다.

단아

2023-04-29 04:45:09

저는 이 수필을 국어교과서로 접해서, 오늘하루님 말씀이 더더욱 와닿습니다. 처음엔 그냥 문제를 풀 용도로 읽었거든요. :) 막 이 글의 주제를 찾고, 글쓴이의 의도를 찾구요ㅎㅎ 그땐 그냥 머리로만 '좋은 글이다' 생각했었는데 삶을 헤쳐나갈수록 심정적으로 커다란 위로가 되는 것을 느꼈습니다. 너무 힘들고 어려울 때 버틸 수 있는 힘이 되고.. 오늘하루님께도 그런 글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 

더리치

2023-04-29 00:34:38

좋은 글 감사합니다. 많은분들 공감하실거 같습니다

단아

2023-04-29 04:49:16

부디 그랬으면 좋겠습니다. :) 더리치님께도요.

보처

2023-04-29 00:35:51

정말 좋은 글 나눔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단아

2023-04-29 04:53:52

보처님!! 사실은 보처님 글 정독하면서 공부하다가 '왜 나는 이렇게 아는게 없을까...' 좌절하면서 쓴 글입니다..!!ㅎㅎㅎ 그동안 보처님께서 다른 마모님들께 아낌없이 조언해주시고 자세히 설명해주셨던 글들이 지금 저한테 엄청 도움이 되고 있습니다. 너무 감사합니다. :)

호랭바라기

2023-04-29 00:38:30

상처들도 천천히 들여다보는 그 과정 자체만으로 치유가 되고 그제서야 저한테 소중한 경험이 되는 것 같아요

단아

2023-04-29 05:02:34

저도 호랭바라기님과 같은 생각입니다. 사실 상처가 난 지 얼마 안되어서 피가 철철 흐를 땐, 이걸 똑바로 바라보는거 자체가 너무 아프거든요.. 얘네들을 천천히 살펴봐줄 수 있다는 사실 자체로, 이미 어느 정도 벌어진 살이 다시 붙었다는 증거가 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때서야 상처들이 호랭바라기님 말씀대로 소중한 경험으로써 내 안에 쌓이게 되는 것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

rondine

2023-04-29 05:22:46

잔잔하고 아름다운 글 나누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살면서 마치 도돌이표 처럼 아무리 걸어도 제자리인 것 같을 때가 있는데 사실은 나선형으로 된 계단을 천천히 오르고 있는 중 아닐까 되내이면 좀 괜찮아지는 것 같아요. 우리 모두 힘내요 :)

단아

2023-04-29 10:06:43

그렇네요.. 매일 열심히 걸어도 제자리에 있는 것 같을 때가 정말 많은데..ㅠㅠ 나선형 계단을 천천히 오르고 있다고 말씀해주신게 정말 좋은 것 같습니다. :) 감사합니다.

달라스초이

2023-04-29 06:33:32

원글을 찾아서 읽어봤습니다. 적절한 비유로 인생의 고초를 잘 비유하셨더라구요. 덕분에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단아

2023-04-29 10:13:36

달라스초이님이라면 왠지 원글까지도 함께 읽어봐 주시지 않을까..? 생각했는데!ㅎㅎㅎ 저도 평소에 달라스초이님 올려주시는 글들 챙겨 읽는 애독자랍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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