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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일모아 게시판   [금요스페셜]
내 인생은 시트콤 (16): 내 워라벨을 돌려줘요 ㅠㅠ

bn | 2024.07.11 02:29:19 | 본문 건너뛰기 | 댓글 건너뛰기 쓰기

지난 이야기: https://www.milemoa.com/bbs/board/10292933

 

작년 말, 팀을 옮긴 후, 환상의 워라벨을 즐기던 bn.

 

휴가 한번 갔다 왔더니 차례로 하나 둘 씩 사라지는 팀원들.

 

테크 인더스트리의 황금기는 저물고 레이오프와 zero based budgetting이 판치는 비정한 뉴 노멀의 시대. 

 

홀로 남아 액받이 무녀처럼 프로젝트를 막으며 마시면서 배우는 재밌는 게임 일 폭탄을 무지개 반사받아치고 SOS치는 법과 일 관리하는 법을 강제로 깨닫게 되는 시트콤 이야기.

 

시작합니다. 

 

1. 사내 다른 팀으로 탈출!
 

하와이 산불을 피해서 휴가를 지내고 온 한 달 뒤 갑자기 하던 프로젝트가 VP님들 간의 대화 후 회사 전략상 이건 접는게 좋겠다고 캔슬 당했습니다. 분명히 business impact 계산도 잘 나오고 내부적으로 이거 좀 제발 해달라는 팀도 많았는데 뭐 그래요 저희 같은 일개미는 위에서 시키면 접어야죠. 

 

그와중에 절 안 건들던 매니저 친구 (나랑 같이 일 안하던 친구인데 승진하고 내 매니저가 됨)가 별 헛짓거리를 하기 시작합니다. 솔직히 이쪽 파트 하나도 모르면 좀 가만히 놔두라고… 아 스뚜레스. 제가 유일하게 믿을 수 있는 코워커도 매니저에게 시달리다 못해 다른 팀으로 도주합니다. 그놈의 AI가 뭐라고 다들 왜 그거 하겠다고 가는지… 흙흑 그래도 새 프로젝트 받아서 꾸역꾸역 일을 합니다.

 

여름에 프로젝트 캔슬 이후 멘붕이 와서 여러 곳에 자리 있는지 밑밥을 던졌었는데요. 평소 협업하던 팀에서 인제서야 자리가 났다며 오퍼가 왔습니다. 지금 팀에서 새로 받은 프로젝트는 맘에 들었지만 매니저 삽질도 그렇고 요새 디렉터 밑에 팀 전체가 방향을 못 잡고 있던 느낌이 강해서 (사실 하던거 타의로 캔슬당한게 두번째 입니다) 이직을 고려해 보기로 합니다. 

 

그와중에 팀은 시애틀에 있었는데 매니저가 리모트로 고용을 승인 받아본 적이 없다 하셔서 1주일간 하루는 현실 부정 하루는 체념하고 이사할 생각 미친듯이 반복하는 (이게 현실이야? 이렇게 이사 가는거야? 애 학교는? 1년 선납한 발레는? 아니 일단 어느 동네에 집을 봐야 하는거야?) 헤프닝이 있었지만 넘어가도록 하겠습니다.  다행히 지금 있는 북캘리 오피스에 있어도 된다는 승인이 날 때 까지 진짜 피 말렸어요. 하필 땡스가 겹쳐서 윗 분들이 다 휴가 가셔서 결정이 늦어졌네요. (일단은 여기 있기로 했지만 진지하게 시애틀로 이사갈까 계속 생각 중에 있습니다. 많은 의견 바랍니다). 

 

그렇게 4년 넘게 일했던 팀에서 옮기기로 결정을 하고 현 팀과 파트너 팀에 인사를 돌리기 시작했습니다. 근데 반응이… 읭 너 가서도 원래 하던거랑 똑같은 일 하는 거 아냐? 네… 가면 우리 팀이랑 계속 일하는 거? 그럼요... 너 원래 하던 일 정말 하고 싶었구나. 그… 그런가 봅니다. 

 

그와중에 짜증나던 매니저는 제가 옮긴다고 선언한 뒤 1주일 뒤에 본인도 다른 팀으로 가네요? 이게 뭔… 이렇게 제가 입사후 4년간 일했던 정들었던 팀은 매니저 하나의 트롤짓으로 인해  공중분해 되었습니다. 

 


2. 환상의 워라벨

 

예상 했던 대로 넘어가니까 아무도 달라지는게 없습니다. 뭐 하던 일 똑같고요 같은 사람들 만나고. 그와중에 램프업 하라고 매니저가 일을 좀 설렁설렁 줍니다. 

 

팀과 매니저는 다른 도시에 있고 현재 도시에 같이 있는 유일한 팀원인 학교 선배는 알고 보니 회사에 잘 나타나시지도 않더라고요. 커피배징이라고 들어봤나. 그와중에 실질적으로 같이 일하는 사람들은 동부에 있어서… 동부시간으로 퇴근시간이 끝나면 실질적으로 같이 일하는 사람들이 퇴근해서 일을 할 필요도 없고 코드리뷰도 안되니까 일 진행이 안되더라고요. 뭐 서부시간으로 출근하고 동부시간으로 퇴근 이후에는 적당히 애 픽업해서 저녁먹고 재우고 밤에 게임하고… 

 

받은 프로젝트도 팀에서 주도하는 몇 백명이 참여하는 대형 프로젝트로 들어갔고요. 예전 팀에서 현 팀이랑 일할 때 얘네 일 왜 이렇게 허술하게 하지 하던 부분을 몇개 찔러서 테스트 하다보니 잭팟이 나서 큰 버그도 여럿 고치고 설렁설렁 일하면서 칭찬도 받고. 진짜 환상의 4개월을 보냈습니다.

 

 

3. 로스카보스

 

4월초에 프로젝트 런치 잘한 상태로 1주일간 휴가를 갔습니다. 노트북은 가져갔지만 일은 거의 안하고 진짜 물에 둥둥 떠있으면서 밥먹고 술먹는 낙원에서 잘 쉬다 왔습니다. 피투는 너무 잘 쉬느라 이빨에 골드 온레이가 빠진지도 몰랐습니다. 너무 맛있던 나머지 이빨의 금도 냠냠... 

 

자세한 후기는 사진 한장으로 대체합니다. 

20240408_131702.jpg

언제나 그렇지만 제 인생이 이렇게 편하게 흘러가면 시트콤이 아니죠? 벌써 7월이라는게 믿기지 않는데 정말 이 때 휴가 갔던게 벌써 전생 같네요. 아 옛날이여. 

 

 

4. 실종

 

휴가 돌아온 뒤 며칠 뒤 프로덕트의 총괄 리드가 승진을 했다고 합니다. 아침에 1:1할때도 우린 해냈어 승진 축하해 하며 화기애애하게 마무리 지었습니다. 그게 마지막이 될 줄은 꿈에도 모르고.

 

그날 오후에 매니저가 1:1 하더니 갑자기 리드가 leave를 갔다고 합니다. 얼마나 갈지 모른답니다. 일단은 저희팀에서 그 프로젝트 하던 사람 중 제가 최선임이니 일단 당분간 백업을 부탁한다고 합니다. 

 

그 다음주 월요일 퇴근 직전에 매니저 채팅이 들어옵니다. xyz is no longer with 회사 effective now. That’s all I am allowed to say. 

 

자세한 상황은 어찌어찌하게 알게 되었습니다만 발설하면 끌려가니 이해해 주시길 바랍니다.

 

 

5. 팀 근속 10년을 인수인계 없이 짜르면 후임의 인생이 폭망합니다.

 

매니저도 멘붕. 팀의 다른 시니어 학교선배도 멘붕. 우리가 잘못하지 않았지만 일단 수습은 해야 합니다. 

 

사실 월초에 런치한 프로덕트는 월초에 큰 행사가 있어서 그때 발표하고 싶다고 저보다 월급을 10배이상 받으시는 분들이 결정하신 거라 일단 발표하고 파트너팀 여럿이 모여서 보강작업을 해야 하던 상태였어요. 일단 제가 하기로 했던거 다 내려놓고 일단 그거 프로덕트 리드 부터하라고 합니다. 그렇게 갑자기 리드가 되었습니다. 승진 아니에여… 월급 안 올랐어여…

 

첫 48시간은 정말 미친듯이 모든 파트너 팀과 미팅 잡고 채팅하면서 현재 진행상황부터 파악합니다. 인수인계가 제대로 안되어있고 전 큰 그림을 보고 있지 않았던 상황이라 하나라도 놓치면 큰일입니다. 그 와중에 온갖 팀과 고객님이 문의가 들어옵니다. 대충은 알지만 현재 진행상황을 확실하게 모르다보니 시간이 계속 들어갑니다. 

 

그렇게 제 워라벨은 훅 갔습니다. 서부시간이 출근하고 동부시간에 퇴근 하는 시절은 옛말. 다음날 수면교육 안된 고양놈이 밥 달라고 깨워서 새벽 6시에 일어났더니 폴란드에서 당장 롤백해달라고 메세지 받으며 하루를 시작. 퇴근하고나서는 타이완에 있는 팀에서 들어온 연락을 처리하느라 진짜 첫 한주동안은 하루에 12시간씩 일한 것 같습니다. 설렁설렁 일 배우고 있었는데 극한상황에 처해지니까 1주일만에 모든 걸 다 터득하게 되더군요. 

 

그와중에 그나마 일 잘하던 친구가 이직한다고 선언하고요. 1년넘게 pip하던 친구도 잘 안 풀려서… 사라집니다. 정말로 저희 팀에서 이 프로젝트 하던 사람은 저 혼자 남았어요. 

 

 

6. 교훈?

 

사실 제 인생이 시트콤이라서 이런 것이지 대부분의 경우 이런 극한 상황에 처해지기는 어려운 것 같습니다. 이래저래 약간 운 나쁜 상황이 한꺼번에 겹친 것거죠. 

 

하지만 요새 테크 회사가 예전처럼 넉넉하게 사람을 뽑아가며 일을 시키지 않아서 이렇게 단기적으로 나마 인력이 부족한 상황은 언제든지 처해질 수 있는 것 같습니다. 레이오프도 레이오프고 사람이 나가도 backfill이 안 주어지는 경우도 흔하고요. 아무래도 사람 늘리는 데 부담이 있다보니 (계속 다른 파트에서 레이오프 하는데 눈치 보일 수 밖에 없죠) 매니저들도 약간 극한으로 몰리기 전에는 추가 인력 보충신청을 못하는 분위기가 유지되는 것 같습니다. Zero based planning을 한지 벌써 2-3년 넘어가는 것 같은데 당분간은 이런 분위기가 유지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제가 일련의 사태를 겪으면서 배운 걸 한번 정리해 봅니다. 

  • 낌새가 이상하면 당장 탈출 해야 합니다. 분위기가 안 좋으면 빨리빨리 내려놓고 능력이 되는데로 도망가는 게 답입니다. 옮기려고 해도 시간이 좀 걸릴 수 있습니다. 여기저기 파트너 팀에 밑밥을 던져 놓으니까 몇 달 뒤에 입질이 오더라고요. 제가 자세히 적진 않았는데요 전 매니저가 약간 가스라이팅 하다가 제가 옮긴다니까 본색을 바로 드러내더라고요. 
  • 즤 매니저 보니까 무조건 아는 사람만 뽑습니다. 요새 분위기가 안 좋으니까 어느 포지션이든 사람이 계속 몰리고요. 오래 같이 일해봤던 파트너나 같은 디렉터 밑에 다른 팀. 아니면 최소한 아는 사람 통해서 백그라운드 체크가 되는 사람만 뽑아요. 팀 내에서 선호되는 포지션이 비면 일단 자기 리포트 중에서 그 직무 원하는 애들 먼저 밀어넣고요. 테크 회사 진입을 원하시면 가장 선호하는 부서에 못 간다고 해도 일단 들어와서 간 보는 것도 추천 드릴 수 있는 것 같습니다. 특히 빅테크의 경우 자체 인프라가 외부 인프라랑 다른 경우가 많아서 신입직원이 일하기 전 까지 좀 많이 배워야 하는데요. 요새 같이 어지간한 헤드카운트가 급한 상황에서 열리는 경우 온보딩 필요한 사람보다 지금 당장 조금이라도 일 시키는 사람 절대적으로 선호합니다. 
  •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에는 한계가 있습니다. 모든 일을 다 해내려고 하면 망할 수 밖에 없어요. 무리하게 하다보면 몸부터 맛탱이가 가고 그러면 일이 더 밀립니다. 최대한 할 수 있는 일만 정해서 하고 극한 상황이 아니면 무리한 야근은 피해야 합니다. 그리고 시간 없다고 해도 짬 내서 운동 해서 체력을 길러야 살아남을 수 있습니다. 
  • 우선순위. 들어오는 일이 할 수 있는 일보다 많으면 어떻게든 우선 순위를 정해서 일을 진행 시켜야 합니다. 1주일 안에 안하면 터질 일. 한달 뒤에 터질 일. 지금 사람들을 끌어모아서 일을 벌리지 않으면 1년 뒤에 나를 엿먹일 일. 등등등…
  • 검색할 수 있는 기록을 남기기. 채팅과 이메일이 하루에 수십번 들어오면 계속 뭔가를 까먹을 수 밖에 없습니다. 기록을 최대한 남겨서 지금 당장 터지는 일을 수습하고나서 기억 할 수 있는 곳이나 검색이 가능한 곳이 적습니다. 
  • 최대한 징징댑니다. 그리고 내가 혼자서 못 할 것 같으면 혼자서 끙끙되지 말고 바로 헬프치세요. 비상상황에 처해지면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이해해 줍니다. 특히나 그 비상상황이 장기화 될 상황이 아니라 단기적으로 생긴일이라고 이해하면 어느정도 까지는 배려를 받을 수 있습니다. 혼자서 수습이 어려운 일이 있으면 당연히 헬프를 쳐야 합니다. 
  • 도움을 받고 싶으면 도움을 줄 수 있는 사람부터 알아야 합니다. 프로젝트에 다른 팀 사람들이 백명단위로 들어오게 되면 누가 누군지 알기 힘들고 사실 본인이 외향적인 성향이 아니거나 기억을 잘 못하면 누가 뭘 하는지 모를 수도 있습니다. 그래도 최대한 누가 어떤 일을 하는지 대충 감이라도 잡아야 나중에 도움이 필요할 때 누구에게 물어봐야 하는지 알 수 있더라고요. 
  • 모르면 철판깔고 물어보세요. 이건 사실 회사마다 분위기가 다를 수 있습니다만 다행히 저희 팀이나 회사에서는 뭘 물어본다고 무시하는 분위기는 아니었습니다. 그래도 아직까진 팀의 신입이고 비상상황에 처해있으니 거리낌없이 질문을 할 수 있었고 아직까지는 큰 사고 없이 일을 잘 막을 수 있었습니다. 

 

 

7. 해피엔딩(?)

 

사실 상황은 점차 나아지고 있습니다. 자의든 타의든 없어진 팀원도 새로 뽑으라고 헤드카운트가 나왔고요. 매니저도 이거 말고도 추가적으로 문제가 생겨서 한 추가 헤드카운트 신청도 승인이 나서 (매니저랑 다른 시니어랑 왜 우리가 인력 충원이 필요한지 적어보니까 사유가 20가지가 나와서…) 오히려 원래보다 팀원이 5명 늘어나게 될 예정입니다. 물론 다 뽑아서 가르치고 하려면 초반에 힘들겠지만 좀 나아지겠죠. 

 

이번주엔 제 밑으로 두명이 들어왔고 더더욱 매니저의 다른 서브팀에 있던 친구들이라 별 어려움 없이 일을 시킬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물론… 아직까진 제가 시간이 없어서 못하고 있던 일을 맡겼기 때문에… 당분간은 바쁜 시간을 보낼 것 같습니다. 


음 이번에도 결론을 내야 하는데요. 어지간하면 인생을 시트콤 처럼 살지 말라는 충고를 드리며 마무리 해보겠습니다. 

 

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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