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주에 간 김에 주변을 둘러 보기로 했다.
게스트하우스를 나와 차를 타자 바로 잠든 3호, 좀 지나 1, 2 호도 잠이 들었다.
자던 아이를 깨워 세운 곳은 임진각이다.
아이들이 말로만 듣던 '노스 코리아'가 바로 저 너머다.
그런데 2호의 눈길은 북쪽 아닌 반대쪽에 쏠렸다.
단체 사진 찍자는데도 다 같이... 화려한 모양의 연이었다.
다음은 달리고 싶은 '철마' 앞에서
비극의 상징이련만, 이젠 산전수전 겪고 우뚝 선 용장 처럼 느껴진다.
더 이상 갈 수 없는 북쪽 끝, 염원을 담은 리본들.
사진을 찍겠다는 데 모자로 티격태격. 결국 멋진(?) 단체 사진은 포기.
이쯤에서 차에서 내릴때 자던 아이를 깨우던 '공약'을 실천하기로 했다.
하드 하나씩, 2호는 설사를 한 뒤라 손에 쥐고 쉽게 먹지를 못한다. (결국 반만 먹기로)
임진각 분단의 현장에서 공원으로
공터를 보자 뛰기 시작하는 2, 3호.
공원에 마련된 야외 무대에선 다음날 공연의 리허설이 있었다.
잠시 앉아 뚫어져라 보던 1호.
오래 가지 못했다. 1, 2, 3호 어울어져 달리고 뛰고, 런 런!
땀이 범벅이 된 채 달리는 아이들을 해지기 전에 가자며 세웠다.
주차장으로 가던 발길 돌려 3호를 팔랑개비 앞에 세웠다.
처와 1, 2호는 처음인 임진각, 나와 3호는 3년 전 왔었다.
감사합니다. 다만 막내는 다음 3년 후에는 여전히 귀엽기는 힘들 만큼 올해 부쩍 큰 것 같습니다.
앞으로 3년후의 여행기가 벌써 기다려 지네요...^
아고, 기대 감사드립니다. ^^ 부응토록 꼭!
와!저기콘서트 다음날 할때 여름방학맞이해서 혼자 한국 가있는 딸래미와 친정 엄마가 거기 가셨었는데요
정말 신기합니다 ^.^*
아하, 저도 본 공연 사진을 봤으면 신기했을 것 같아요. 하루 늦춰 왔우면 본공연 보는 건데 하며 아쉬워 하긴 했지만 어린 애들 있는 우리한테는 놀며 쉬며 듣는 이정도 음악회(?)가 딱이긴 했어요.
아고. 정말 안타까운 마음이 크시겠네요. 사실 고향 따위야 뭐, 어디던 정붙이고 살면 되지 하던 시절도 있긴 했습니다만, 미국에 살면서 조금이나마 고향에 대한 애틋함을이해했습니다. 그렇더라도 북한에 고향을 둔 어르신들 한은 헤아리기 힘들겠지요. 모쪼록 하루라도 빨리 교통이 가능하길 빌어 봅니다. (아이들이 즐거우면 부모도 즐거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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