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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아버지의 마지막 사랑.

참울타리, 2021-11-02 16:55: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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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오랜만입니다.

 

 병원은 코비드 환자가 많이 줄었습니다. 그러나 병원이 코비드가 아니어도 여전히 각종 다른 질환으로 고통 받는 이들과 함께하는 건 변함 없는 사실이고요.

 

 80세 할머니가 심각한 뇌출혈로 병원에 입원하셨습니다. 치매를 장기간 앓으셔서 긴 요양원 생활을 하시던 분이셨습니다. 가족분들은 할머니가 회생 불가능한 뇌출혈로 더이상 소생 가능성이 없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더이상의 연명치료를 거절하시고 호스피스 병원으로 전원을 기다리는 상황이었습니다.

 

 보호자들이 이미 결정한 상황이고 병원에서는 할머니가 너무나 많은 고통을 경험하지 않게 진통제를 주기적으로 투여해 주는 상황이었습니다. 할머니는 뇌출혈로 정신을 잃었을 때 흡인성 폐렴까지 일으킨 상황이라 할머니는 상당량의 산소가 필요한 컨디션이셨습니다.

 

 이번 케이스는 뇌출혈이 일으킨 뇌부종이나 흡인성 폐렴으로 인한 폐혈증으로 24시간 내지 48시간 정도 돌아가시는 것으로 예후 예측을 했는데. 이와 같은 예측은 항상 맞아 떨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어떤 분들은 그보다 훨씬 더 빨리... 어떤 분들은 조금 더 오래 살아계시기도 합니다.

 

 이런 케이스들은 주로 의학적으로 환자 보호자들에게 전화로 업데이트 할 것이 많이 없기 때문에 사회복지사의 역할이 큽니다. 할아버지가 일번 선택으로 택했던 댁에서 가까운 호스피스 병원에서 할머니를 모실 수 없다고 난색을 표합니다. 그도 그럴 것이 할머니는 코마 상태인데... 곧 돌아가실 분에게 자기네가 제공할 수 있는 서비스가 어떤 필요가 있겠다는 요지였습니다. 매니저의 걱정은 보험 회사에서 이 필요성을 인정하느냐 마느냐 관건입니다. 간호사 출신의 담당 케이스 매니저와 담당의사와 차례로 이야기를 나눕니다. 

 

나 : "어떤 이야기인 줄을 알겠지만 할머니는 뇌출혈 뿐만 흡인성 폐렴도 있고 해서 호흡곤란이 있을 때 몰핀이 제때 투여되어야 하는 상황입니다. 의식이 코마 상태라고 end of life 치료가 필요하지 않은 것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삼일 째 회진 도는 날, 편안하게 잠을 자는 듯 보이는 할머니 곁에 할아버지가 계십니다. 순간 할아버지가 마스크를 낀 얼굴이 할머니보다 젊어보이셔서 아드님인가 싶었지만 자기가 남편이라 인사합니다. 자신의 집에서 가까워서 선택한 호스피스 병원이 입원을 주저한다고 해서 심기가 불편하십니다. 할아버지 맞은 편 자리에 앉아 설명합니다.

 

나 : "그 분들은 저처럼 할머니를 옆에서 보는 의료진이 아니기 때문에 제가 보는 상황이랑 좀 다르게 받아들일 수 있어요. 제가 호스피스 치료 필요성을 피력한 상황이니 좋은 결과가 있을 것이라 믿어요."

 

할아버지 : "할멈은 자기가 누군지 알고 기억하는 날이 언제일지 모를 정도로 너무나 오래 치매로 고통 받았어... 우리 와이프는 이렇게 살고 싶지 않아했어. 자기의 기억이 사라져 갈 때 그런 식으로 오래 살고 싶지 않아했다고."

 

 할아버지의 주름졌지만 두터운 손길이 그간의 가족들의 마음 고생을 이야기 하는 듯 합니다. 

 

할아버지 : "처음에 병원 들어왔을 때 와이프 이틀 못 견딘다고 했는데... 내가 너무 굶기고 있는게 아닌지 맘에 걸려."

나 : "할머니는 의식이 없으셔서 어떤 형태로든 영양 공급하는게 위험하고 치료에 도움되는 상황이 아니예요. 의사들이 예후 예측을 하고 그게 대부분 맞지만. 때로는 조금 더 오래 계시다 가는 분들이 계세요. 할아버지가 할머니 굶기시는 거 아니예요."

 

 할아버지한테 위로와 확신을 전하고 일어나면서 할아버지와 할머니 나이차를 여쭤봅니다.

 

할아버지 : "나 77세야. 울 할멈보다 세 살 어려... 할멈이 치매가 없었을 때 항상 자기가 세 살 더 많다고 뭐든지 자기가 앞장서서 하려고 했는데 말이야."

 

 주름진 얼굴에 과거 행복했던 기억하나가 피어납니다. 그 날 오후 쯤에 할아버지가 원하던 호스피스 병원이 할머니를 받아들이기로 결정납니다. 어떤 마지막이던지 마지막은 외롭고 쓸쓸하지만 이렇게 사랑하는 가족과 함께라면 덜 쓸쓸하겠다는 생각에 할머니의 편안한 마지막을 기도했습니다.

 

 

13 댓글

정혜원

2021-11-02 16:59:38

가지 않는 사람도

갔다와 본 사람도 없고

아는 모든 이들과 다시 못본다는 것은

무섭고도 쓸쓸 합니다

Monica

2021-11-02 17:07:17

참울타리님은 인생관도 보통 저희들이랑 참 다를거 같습니다.   존경합니다.  

rondine

2021-11-02 17:31:49

이야기 나누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잘 읽었습니다.

된장찌개

2021-11-02 17:51:32

보내는 사람도 가는 사람도 함께할 마지막 순간이 그림처럼 보입니다.

괜시리 코끝이 찡한 아침입니다. 안타까움과 눈시울이 함께 붉어지는 얘기지만 한 편으로 따뜻한 얘기를 공유해주셔서 감사합니다.

JM

2021-11-02 18:15:13

눈물이 날 뻔했습니다. 감사합니다. 좋은 글 나눠주셔서...

혈자

2021-11-02 19:00:43

늘 느끼는 거지만 참울타리님 글 참 잔잔하게 잘 쓰셔요.

담담한 문체에서 늘 큰 울림을 받습니다. 감사합니다 오늘도.

씐나

2021-11-02 19:22:36

좋은 글 남겨주셔서 감사합니다. 매번 참울타리님 글을 보며 삶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보게 됩니다.

GatorGirl

2021-11-02 21:22:32

가슴이 아려오는 글이네요. 참울타리님 글 잘 읽고 있습니다. 항상 건강하시고 종종 소식전해주세요!

ShiShi

2021-11-02 21:41:28

여러해전 한국에서 투병하시던 아버지를 미국집으로 모셔와 가정에서 호스피스 치료를 하며 보내드렸습니다. 가족과 마지막을 함께 할수 있다는 것은 세상에 남은 마지막 행복일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참울타리님이 올려주신 글을 보니 아버지 생각이 나네요. 감사합니다.

jjirons

2021-11-02 23:29:07

할아버지 마지막 말씀에 눈물이 핑 도네요. 어떻게 마무리를 해야 하나 가끔 고민해 보지만 뾰족한 답은 안 떠오릅니다. 모두가 겪지만 경험담을 나눠 줄 사람이 없는 일이라 그런거겠죠.

로녹

2021-11-02 23:33:27

좋은 글 나누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favor

2021-11-02 23:43:17

감사합니다.... 

reddragon

2021-11-03 08:21:08

지난여름 호스피스에서 가족을 보낸후라 남의 일 같지가 않습니다. 할아버님 마음이 조금은 덜 아프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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